우승팀 MVP 시계의 주인은 누가 될까?
LG TWINS에는 두 가지 유물이 있습니다. 야구를 너무도 좋아하셨던 선대 구단주께서 팀이 우승하면 우승축하주로 마시려고 사 왔다는 아오모리 소주(저는 일본 술은 모두 사케로 알고 있었습니다.)와 98년에 우승을 기원하며 MVP에게 주려고 사두셨는데 30년 가까이 되는 세월 동안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롤렉스 시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일본에서 사 왔던 90년대의 소주는 모두 증발했고, 이것이 신문 기사화되자 회사 차원에서 다시 사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계는 한번 고장 난 것을 고쳐두었다고 하며, 구입 당시에 8천만 원 하던 것이 현재는 단종되어 중고가 시세가 1억 6천만 원이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매일경제, 23년 10월 8일) 엘지의 정규시즌 우승이 확정된 뒤에 짓궂은 기자가 염경엽 감독에게 “시계는 누구에게 주고 싶습니까?”하고 질문했습니다. 염경엽 감독은 선수들 모두가 힘을 모아 우승했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때 그 기자가 저에게 질문을 해왔다면 저는 김현수, 오지환, 오스틴, 김진성, 신민재 중에서 한 명을 택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정규시즌 공적으로만 줄 수 있다면 현시점에서 저는 김진성을 택하고 싶습니다. 진정한 마당쇠로 거듭난, 전직 마무리 투수 출신 마당쇠 김진성, 그에게 롤렉스 시계를 주고 싶습니다.
부상과 불운의 연속이었던 선수 생활 초반기
제가 기억하는 김진성은 NC 다이노스의 마무리 투수입니다. 무표정한 얼굴, 야구선수라기보다 농촌지도소 공무원 같은 얼굴인 김진성, 어지간하면 칠 수 있을 것 같은 공인데, 제대로 맞혀도 평범한 플라이, 넋을 놓고 기다리면 삼진 아웃을 당했던 공, 김진성의 공을 손댈 수 없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진성은 선수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김진성은 고등학교 때 부상으로 한동안 등판을 못해 1년 유급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4년 드래프트에서 SK와이번스에 지명을 받았고 유급 때문에 2005년에 입단했지만 팔꿈치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1군 기록 없이 재활만 반복하다 2006년에 방출되었습니다. 선수 생활 첫 번째 방출이었습니다.
수술 후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했고 5만 원짜리 헬스장에서 재활했다고 할 만큼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에 넥센 히어로즈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는데, 이곳에서도 2년 동안 신고선수로 있다가 2011년 6월 신고선수 계약이 해지되면서 두 번째로 방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는 약간 운이 없어 보입니다. 김진성의 선수 생활 초반은 부상과 불운의 연속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당시 정명원 투수코치가 김진성을 아껴서 NC다이노스에 입단 테스트를 보라고 추천했고 창단팀 공개테스트에 응시, 극적으로 합격하면서 프로 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때 만난 최일언 코치로부터 투수의 A to Z를 배웠고 선수생활의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오래 쉬었으니 열심히 던져야 했습니다.
던지고 또 던진 NC시절
2012년에 KBO 퓨처스리그에서 NC다이노스의 마무리투수를 맡았습니다. 창단팀이지만 마무리라니, 김진성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꿈의 1군 무대입니다. 4월에 SK전에서 김진성은 팀의 창단 첫 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역사에 남았습니다. 그러나 야심 차게 시작한 2013시즌은 불안했고, 신생팀의 마무리 자리는 폭탄을 돌리듯 다른 선수들에게로 이어져 이민호, 이재학, 손민한 등이 돌려가며 맡았고, 김진성은 이후 계투로 등판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해에 NC는 엘지 트윈스에 창단 첫 승리를, 창단 첫 스윕을 거두는 등, 이래저래 엘지 트윈스와 신생 라이벌 구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에 김진성은 20세이브 이상을 거두며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았고, 데뷔 10년 만에 올스타가 되었다. 대기만성형 선수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시즌에는 부상이 와서 임창민에게 마무리를 넘겼고, 16시즌에 무려 84.1이닝, 17시즌에 89.2이닝을 던졌습니다. 17시즌에는 세계에서 제일 많은 이닝을 던진 구원투수였습니다. 18시즌에 폭삭 망했고 19시즌에 조금 살아났습니다. 20시즌 스프링캠프에서 이런저런 구설에 올랐으나, 연말에 한국시리즈에서 미친 듯한 기록을 보여주며 NC 다이노스 창단 첫 우승의 공신이 됩니다.
하지만 화양연화인 것인지 21시즌에는 다시 구위를 잃었고, 7월 코로나 시국에 터진 NC술자리 사건의 유탄을 맞고 기회도 못 받다가 연말에 방출됩니다. 프로가 비즈니스이기는 하지만, 김진성 같은 선수를, 많이 던지고 성실한 우승 공신을 방출한다니, 팀 운영은 참 매정한 것입니다.
엘지 트윈스에서 마당쇠가 된 김진성
방출된 김진성은 여러 팀에 전화를 걸었으나 엘지 트윈스 명석한 차단장이 얼른 영입하였고, 22시즌에는 진짜 온갖 궂은일은 도맡아 하는 알토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NC 시절에는 황제 소리를 들었다는 김진성은 엘지 트윈스에서 마당쇠가 됩니다. 애니콜이었습니다. 22시즌이 끝나고 C등급 FA가 되었고 약간의 시간 끌기 끝에 엘지와 2년 계약에 성공했습니다. 활약은 좋았지만 나이 때문인지 많은 돈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23시즌 엘지트윈스의 정규시즌 우승의 공신이 되었습니다. 진짜 올해 김진성이 중간에서 이런 활약을 해주지 못했다면 염경엽 감독의 머리는 폭발했을지도 모릅니다. 팬도 감독도 위기에서는 먼저 김진성을 떠올리게 된 것입니다. 이제 한국시리즈에서도 잘 해주기를 기대하며 김진성 편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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