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철투#1. 찬호께이
작가가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공을 들이는 시간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시작하는 철투의 리뷰에서는 한 작가의 책 한 편이 아니라 몇 편쯤을 읽은 뒤, 그 작품들에 대한 주관적인 감상을 표현할 것이다. 혹시라도 나중에 읽을 독자를 위해 되도록 줄거리를 안 쓰려고 노력할 것이다.
찬호께이는 누구인가
홍콩 출신으로 홍콩 중문대학 컴퓨터과학과를 졸업한 뒤 재미삼아 타이완추리작가협회 공모전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바로 결선에 진출한다. 천재다.) 그리고 나서는 뭐 탄탄대로다. 주요 작품으로는 2011년 『기억나지 않음, 형사』, 2014년 『13•67』, 2017년 『망내인』 등이 있다.(이외에도 여러 작품이 있으나 내게는 아직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
찬호께이는 어떻게 알았나
아무리 좋은 작가가 아무리 재미있는 작품을 썼다하더라도 모르면 읽을 수가 없다. 좋은 작가들은 너무도 많고 그러기에는 나는 이제 소설을 읽기엔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새 소설을 시작하는 것이 힘들다.(어릴 때 많이 읽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 나는 ‘한강’의 소설을 못 읽고 있다. 너무 우울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소 이상한 논리지만 미야베미유키의 에도시대물이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격물들에 2023년을 바쳤다. 물론 틈틈이 소세키를 읽고, 이시구로를 읽으며 나름의 균형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이동진의 추천으로(물론 책속에서) 찬호께이라는 소설가를 알게 되었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동진이 말한 ‘재미’라는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찬호께이는 어렵지 않다. 물론 장르가 ‘추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그리고 여성 피해자에 대한 참혹한 묘사가 불편할 때도 있다. 하지만 장르적 특성이라 생각하고 이제 개별 작품들을 간단히 살펴보겠다.
『13•67』
아마도 이 작품이 내가 찬호께이 작품 중에서 제일 먼저 읽은 것으로 보인다. 책 제목인 <13•67>은 2013년과 1967년을 가리킨다. 이 책은 6편의 단편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967년부터 2013년까지 벌어진 여섯 건의 범죄사건이 각 단편의 주된 이야기다. 사건은 시간의 역순으로 제시되며 뛰어난 추리 능력을 지닌 홍콩 경찰 관전둬가 그의 파트너 뤄샤오밍과 함께 사건을 해결해가는 방식이다. 첫 번째 단편부터 여섯 번째 단편까지 사건들이 조금씩 연결고리를 지니고 있어서 찬호께이의 작가적 역량에 감탄하게 된다. 진짜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
이 작품은 1인칭 화자로 진행되는 주된 이야기와 각 장 뒤에 ‘단락’이라는 이름으로 과거 어느 시간의 이야기가 짧게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등장한다. 주된 이야기에서 ‘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고 어느 날 아침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깨어난 후 지난 6년간의 기억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나’는 과거 어느 시점에 일어난 사건의 범인이 진범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 사건을 파헤친다. 그리고 어떤 반전이 일어나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는 소설이다. 그런데 반전만 생각하면서 읽으면 재미없고, ‘나’를 따라서 가다보면 어느 순간 찬호께이의 트릭에 빠져있는 자신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분명 이런 플롯은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되어왔지만 작가가 찬호께이이므로 용서가 되며, 박수를 칠 수밖에 없다.
『망내인』 -네트워크 인간
현대인들은 접속해 있다. 그리고 네트워크 상에서 수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흘리고 다닌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또 어떤 이들은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가혹한 비판을 하고, 심지어 조작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누군가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오프라인에서의 사소한 일들이 온라인 상에서 확대 재생산되면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아무튼 내용은 그렇고. 이 소설의 가장 큰 재미는 ‘아녜’라고 하는 탐정이다. 거의 무한 능력자이다. 『13•67』에서 관전둬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노환으로 별세했는데, 이번에는 ‘아녜’라고 하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워서 멋진 캐릭터가 나와서 사건을 해결한다. ‘아녜’를 따라가며 사건을 해결하는 즐거움이 있다.
『풍선인간』
2018년에 발간된 책으로 찬호께이가 작가 생활 초기에 쓴 연작 단편을 묶은 작품집이다. 특이한 초능력을 얻은 뒤 청부살인업자가 된 남자 이야기다. 앉은 자리에서 한 시간 정도면 후딱 읽을 수 있는 분량이고, 심지어 재미도 있다. 살인자가 어떻게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지를 알아가는 이상한 재미다.
번역자 강초아
이 작품들은 어느 하나 빠짐없이 재미있다. 그리고 그런 재미를 느끼게 해준 또 한 사람이 있으니 번역자 강초아다. 강초아는 한국외대 중국어과를 졸업후 출판사를 다니며 다양한 종류의 책을 만들었다는데 그게 무슨 소용일까. 강초아는 찬호께이 번역만 잘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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