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투수가 귀한 KBO리그
KBO리그에서 선발투수를 키우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여러 구종을 던질 수 있어야 하고, 체력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5회를 버틸 수 있어야 합니다. KBO리그는 10개 팀이 운영되는데 팀마다 2명씩의 외국인 선수를 선발투수로 쓰고 있습니다. 이들 외국인 선발투수 대부분은 마이너리그에서 두각을 보였는데도 메이저리그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선수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대체로 10억 안팎의 돈을 받고 KBO리그에 오고 이들의 성공 여부가 소속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소속팀에서 한국인 선수는 선발투수 자리가 결국 3자리 정도만 있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 세 자리도 차지하고 꾸준히 던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약 그 자리를 차지하고 꾸준히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그 선수는 돈방석에 앉는 것은 물론이요,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외국인과 함께 내국인 선발투수가 1~2명이 잘해주고 심지어 5선발까지도 잘해주게 되면 그 팀의 그해 성적은 따 놓은 당상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팀이 잘 없습니다. 그래서 올해 엘지트윈스가 우승을 위해 이주형이라는 미래를 내주고 최원태라는 선발 투수 자원을 사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도 대단히 이례적인 것으로 KBO리그에서 한국인 선발 자원은 평소에는 잘 움직이지 않고 FA가 되어서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엘지 트윈스의 경우에는 봉중근 이후 한동안 선발을 잘 키워내지 못했고 심지어 그 봉중근도 외국에서 성장한 선수를 데리고 온 것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FA로 사 왔던 차우찬이 그나마 팀을 지켰고, 퐁당퐁당 이긴 하지만 임찬규가 구멍을 잘 채웠기 때문에 팀이 이렇게라도 버텨온 것을 많은 이들이 알 것입니다.
이민호, 신인 선발 투수의 등장
이민호는 2020년 1차 지명으로 엘지에 입단합니다. 휘문고 출신의 이민호는 2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선발 자원이 부족했던 엘지에 입단하는데, 이 당시 박주홍이라는 선수가 있어서 한동안 팬들은 엘주홍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두각을 나타낸 이민호를 명석하신 차단장님께서 픽을 하셔서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아직 키움주홍이 능력치를 드러내지 못했으므로 현재까지는 이민호가 승리하고 있습니다.
이민호는 데뷔 시즌에 개막엔트리에 들었고 코로나로 늦게 개막한 5월에 두산과의 경기에서 1이닝을 던지며 프로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저는 이때만 해도 이민호가 신인인 줄을 몰랐습니다. 중고 신인으로 생각했다고 할까요) 5월 21일에 대구 삼성전에서 정찬헌의 대체 선발로 등판해 5이닝 이상을 던지며 승리투수가 되었는데 이것이 이민호의 프로 첫 승리였습니다. 6월에는 역시 삼성전에서 7이닝 2실점 투구를 하고 패전을 기록하는데 삼성이 물타선으로 약한 모습을 보였다 해도 이런팀을 상대로 이민호는 3~4선발급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이 해에 20경기에 나와서 97이닝 이상을 던져, 4승 4패, 방어율 3.69, WHIP 1.41을 기록했습니다. 선발투수의 탄생을 알리는 데뷔 시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비좁은 리그에서 꾸준히 경기를 뛰면서 선발로 그나마 안정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이민호였습니다. 그래서 엘지트윈스에서도 드디어 선발이 나왔다고 기대했는데, 이듬해 115이닝 8승 9패 방어율 4.30 WHIP 1.17 지난해보다 이닝 수가 20이닝 늘어난 가운데 안타 수는 줄었으나 피홈런 수가 두배로 늘었고 실점과 자책점이 늘었습니다. 조금씩 불안했습니다. 그리고 22년에는 이닝 수는 119이닝에 승수는 12승인데 방어율이 5.51이고 안타 수는 146피안타 WHIP는 1.58을 기록했고 자책점이 무려 77점이 되었습니다. 데뷔 시즌에는 타선의 도움이 부족했다면 시즌이 거듭될수록 난타를 당하는 일이 많아졌고, 긁히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아팠습니다. 시즌 전에는 5선발을 맡을 것으로 봤는데 시즌 시작하자마자 이러저러한 난조를 보이더니 결국 아팠고, 회복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시즌을 마치고 입대가 예정되어 있는데, 군에서 구종도 좀 늘리고, 몸도 좀 회복해서 돌아왔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신인 때 반짝하고 끝나는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민호는 신인 때부터 당차게 던지던 선수이며 밝은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역시 프로는 성적이라, 팬들은 성적이 떨어지면 금방 잊어버리고 맙니다. 이민호 선수는 앞날이 창창하니 제발 선발투수로 돌아오길 바라 봅니다.
김윤식, 2인자 같은 1인자
김윤식은 2020년 2차 1라운드(전체 3번)로 엘지에 입단합니다. 고교 때 강한 승부욕을 보여준 것이 엘지에 픽이 된 계기로 보입니다. 왼손투수로 부드러운 폼에서 구사하는 다양한 구종이 강점인 투수입니다. 빠른 볼 평균 구속은 140대 초반이지만 최고 구속은 149로 이 비좁은 리그에서도 준수한 구속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아시겠지만, 김광현이나 양현종같은 선수들은 MLB리그에서 결국 살아남지 못했지만 아직 이 리그의 선두급 선수들이고, 올해 NC의 페디 선수 같은 경우에는 MVP급 선수지만, MLB리그에서는 5선발이었고, 또 방출되기까지 했습니다. 차이가 난다는 점을 감안해주세요.) 김윤식은 포심, 두 가지 빠른 볼,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을 모두 구사할 수 있습니다. 데뷔 후 2년 차까지는 영점을 못 잡았고 3년 차부터 제구력이 안정되었습니다. 공을 한 개라도 던지면 이후에는 무조건 쉬어야 하는 루틴을 가진 선수라 연투가 안 된다고 하니 선발이 아니면 안 되는 가성비 제로의 투수로 보입니다. 물론 선발로 5이닝만 꾸준히 던져주면 가성비는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20년 5월 5일에 개막전 8-1로 앞선 상황에서 등판하여 1이닝 2피안타 1실점으로 데뷔전을 마칩니다. 데뷔전 상대가 김재환, 페르난데스, 오재일이라고 하니 긴장을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6월에 키움전에서 데뷔 첫 선발 등판했고 5이닝 5실점(4자책) 하고 패전투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신인 투수가 이 정도는 잘 던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20년 23경기 67과 2/3이닝 2승 4패 2홀드 방어율 6.25를 기록했고, 21년 35경기 66과 2/3이닝 7승 4패 1홀드 방어율 4.32를 기록했습니다. 이랬던 선수가 22년에는 각성하여 23경기 114와 1/3이닝 8승 5패 방어율 3.31 WHIP 1.33 를 기록했습니다. 엘지가 기다리던 선발투수의 탄생입니다. 이민호가 삐끗하는 사이에 김윤식이 냉큼 그 자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엘지는 탄탄한 불펜진에 이제 선발진도 갖춰지는 모양새였습니다. 그렇게 기대하고 기대한 23년 시즌이었습니다.
23년, 기대하며 시작했지만 이민호도 김윤식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민호는 그대로 시즌이 끝났고 그래도 김윤식은 부진에서 돌아왔습니다. 17경이 74와 2/3이닝 6승 4패 방어율 4.22 WHIP 1.49를 기록해 아주 잘 던지지는 못했지만 팀이 위기에 처한 후반기에 돌아와서는 그래도 4~5이닝은 꾸준히 막아주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신인 선수들도 7이닝씩 팍팍하고, 완투하는 모습도 나오는데, 우리나라 신인들은 5이닝을 넘기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최근 몇 년 사이의 이의리라는 대형 신인을 발굴한 기아, 그리고 올해는 윤영철이라는 신인을 얻은 기아가 너무도 부럽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자잘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인 선발 자원들이 있으니 기대를 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민호와 윤식이가 어서 기량을 회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어서 알을 깨고 나와서 선발투수로 팍팍 던져주길 기대하는 마음을 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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