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주, 부활하자
사실 함덕주를 데리고 올 때, 선발투수로 활용한다고 하기에, 함덕주가 원래 선발자원이었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특별히 길게 던진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역시 야구 보는 눈들이 있으신 분들은 다른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함덕주의 트레이드 상대가 양석환일 때는 좀 아쉬웠습니다. 양석환은 팀에서 나름으로 열심히 키우고 있던 선수였고, 군대에도 다녀왔고 두 자릿수 홈런도 친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수를 보낸다는 것이 다소 아쉬웠고 결과론으로 보자면 이 트레이드는 대실수에 해당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팀에서 양석환이라는 선수에게 고정적인 자리를 주지 못했는데, 그것을 이겨내고 옆집으로 가서 성장한 양석환이 곧 다가올 FA에서 대박을 터뜨렸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기아나 삼성으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양석환으로서는 이제 붙박이 주전이 가능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데다 구장이 조금 작은 곳으로 가면 홈런타자 면모를 과시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잠실에서도 30홈런을 친 선수인데, 작은 구장을 쓰는 곳으로 가면 꾸준히 30개씩은 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함덕주를 위한 글이니, 이제 함덕주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함덕주, 로또픽의 모범 선수
함덕주는 2013년 5라운드 전체 43번으로 두산 베어스에 지명되었습니다. 이 드래프트에서 조상우, 강승호, 장현식, 구승민 등이 눈에 보입니다. 전면 드래프트 시절인데 1라운드 선수들이 팀에서 제대로 정착한 선수가 잘 안 보이고 함덕주나 구승민처럼 하위 라운드가 오히려 눈에 띄는 것도 신기합니다. 들리는 말에 함덕주가 드래프트 될 때에는 거의 로또 픽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입단 당시 함덕주는 최고 구속이 140에도 못 미쳤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웬만한 고등학생들의 직구 구속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체격을 키우면 구속이 늘어날 가능성”이 실제로 이뤄졌고, 트레이닝으로 체중을 늘린 다음에 구속이 140대 후반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두산 스카우트팀에 찬사를 보냅니다. 불과 몇 킬로 차이 같지만, 짧은 투수판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그 몇 킬로가 선수의 수준을 다르게 만듭니다. 체중 증가가 가져온 변화가 몸에 무리를 주는 수준이 되어 유리몸 이미지가 생긴 것은 문제였지만, 그래도 구속이 높아졌다는 것은 유리한 점입니다.
함덕주는 포심,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 등 4개 구종을 던지다가 최근에는 커브를 거의 던지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체인지업이 좋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함덕주는 왼손 투수에 공을 던지는 왼팔을 등 뒤로 숨기는 디셉션과 반대 팔을 크게 휘두르는 동작 때문에 타자들이 혼동을 일으킨다고 포심이 긁히는 날에는 타자들은 그냥 넋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함덕주는 신장에 비해 매우 긴 익스텐션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KBO리그 투수들의 평균 익스텐션이 185인데(MLB는 2017년 기준으로 188입니다.) 신장이 181(실제로는 177정도라고 합니다.)인 함덕주는 익스텐션이 190대 후반대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독특한 디셉션과 긴 익스텐션은 함덕주의 체감 구속을 상당히 높여준다고 합니다. 같은 속도의 공을 던지더라도 잘 공을 놓은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타자 입장에서는 치기 곤란한 공을 함덕주가 던지는 것입니다.
함덕주의 정체, 유리몸을 극복하자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으로 보면 함덕주는 한국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꾸준하게 오래 못 던진 것일까요? 함덕주는 공을 던지는 왼손 손가락이 고질적으로 물집이 잘 잡힌다고 합니다. 본인이 선발을 원했고 2021년부터 트윈스에서 기회를 얻었지만 결국 이 증상으로 선발투수는 어렵게 된 모양입니다. 팔꿈치 수술도 했고, 고질적인 통풍 환자라고 하니 여러 가지로 어렵게 어렵게 던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힘겨움에도 불구하고 함덕주는 두산 시절인 2014년에 31경기 26이닝 1승 2홀드 WHIP 1.37을 기록하면서 제대로 된 1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5년 시즌에 68게임에 나와 61과 2/3이닝을 던져 7승 2세이브 16홀드를 기록했고, 16년 시즌은 부상과 부진으로 제대로 쉬어가는 시즌을 보냈습니다. 17시즌은 선발투수로 변신했는데, 5선발로 정착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성적을 보여줍니다. 137과 1/3이닝을 던졌고 9승 8패 2세이브를 기록하면서 방어율 3.67에 WHIP 1.40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18시즌부터는 다시 불펜으로 돌아갔고 50~60이닝을 꾸준히 던졌습니다. 아마도 16시즌 기억이 좋았던 것인지, 함덕주는 선발투수를 원했다고 합니다. 제대로만 던지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으니 도전할 만할 것 같습니다.
2021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3월에 함덕주, 채지선 대 양석환, 남호 트레이드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남호는 신인으로 하드웨어가 좋은 선수였고, 양석환은 수비력이 좀 떨어지지만 그래도 두 자리 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였습니다. 이런 선수들과 불펜 투수 2명을 바꾸는 것은 좀 아쉽다 싶었고, 결과적으로 그랬습니다. 남호나 채지선은 둘 다 보여준 것이 없어서 이야기할 내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두산으로 간 양석환은 1루에 안착하면서 30홈런 타자가 되었고, 엘지에 선발 자원으로 입단한 함덕주는 그대로 뻗어버렸습니다. 엘지에 입단한 함덕주는 은근히 유리 몸이 아니라 대놓고 유리 몸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지만, 만약 서건창, 함덕주가 예전 이름값만큼 해줬다면 아마 꾀돌이 감독이 있을 때 정규시즌 우승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뒷북을 쳐 봅니다.
함덕주의 FA, 어디로, 얼마나
2022년에도 계속 아팠던 함덕주는 드디어 고우석, 정우영이 이상 현상을 보인 올해에 와서야 살아났습니다. 저같은 팬들은 함덕주가 살아난 것만으로도 기쁠 뿐입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으로 함덕주의 지난 2년의 부진은 다 잊었습니다. 올해 함덕주는 위기 상황에 등장하여 곧잘 불을 껐고, 팀 승리를 지켰습니다. 간혹 편안한 상황에 와서 장작을 쌓아놓고 내려가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시즌을 보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올해가 끝나면 FA이더군요. 함덕주는 후반기 들어 또다시 폼이 떨어져서 조정하러 갔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돌아오면 자기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함덕주는 올해가 끝나면 FA가 됩니다. 아마도 팀을 떠날 것 같고 팀에서도 잡지 않거나 못 잡을 것 같습니다. 올해 마무리를 잘하고 좋은 계약을 땄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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