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환, 소금 같은 선수
이 글을 쓰는 저는 경상남도 남해군 출신입니다. 지역 연고 야구단은 롯데 자이언츠입니다. 그런데 저는 연고 개념을 모르고 프로야구를 보기 시작하는 바람에 서울 연고 팀 엘지 트윈스 팬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롯데가 우승하는 바람에 잠깐 롯데를 응원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서 제가 응원하는 팀은 늘 엘지였습니다. 롯데가 암흑기의 비밀번호를 만들 때, 그 옆에서 엘지도 10년 가까이 포스트 시즌에 못 나가는 암흑기를 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늘 엘지 팬이었고, 마산을 연고 지역으로 한 엔씨가 창단했을 때는 유니폼도 샀지만 결국 엘지 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프로야구는 하루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게임이 팀과 팬의 역사가 되고, 좋았던 일, 좋지 않았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같이 나이가 들어가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주변의 롯데 팬들은 올해 엘지의 정규시즌 우승을 보면서 부러워하다가도, 구단에서 우승청부사 감독을 데려오는 것을 보면서 내년 시즌 우승은 롯데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스토브리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역시 스토브리그의 강자는 롯데니까요.
늘 서두는 깁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프로야구라는 길고 긴 1년의 농사 중에서 농구로 치면 가비지 타임이라 할 수 있는 이닝을 처리해주는 소금 같은 선수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수많은 경기를 하다 보면 선발투수가 난조를 보이거나, 야수들이 집단 실책을 범하거나, 공도 좋고 실책도 없는데 상대 타자들이 배리 본즈급으로 치는 이상한 경기가 생깁니다. 그럴 때 너무 큰 점수 차로 벌어진 경기를 간혹 감독들이 버리는 경우가 생깁니다. 대놓고 버리면 벌금을 내야 하므로 적당한 선에서 백기를 들고 백업 선수 간의 대결이 진행됩니다. 이때 별로 무의미해 보이는 이닝들을 처리해주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참 미안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이닝이라도 소화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1군에 오고 싶어 하는 수많은 2군 선수들이 있습니다. 그만큼 1군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늘 이야기 손님은 최동환입니다.
최동환, 관리받지 못한 신인
최동환은 2009년 2차 2라운드 전체 13번으로 엘지에 드래프트 되었습니다. 고졸 신인이었는데 개막전부터 3일 연속 등판했습니다. 우완 사이드암이었고 공이 좋았습니다. 2009년 드래프트에서 엘지는 오지환, 한희, 최동환, 강지광, 정주현, 문선재 등을 뽑았습니다. 이들 중에서 아직 팀을 지키고 있는 선수는 오지환, 정주현, 최동환입니다.
최동환은 분명 공이 좋았고 잘 던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털리더니 부상으로 시즌 아웃 되었습니다. 데뷔 첫해에 38경기 35와 1/3이닝 방어율 7.07에 1승 1패 1세이브 3홀드를 기록했습니다. 초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고, 방어율이 높아서 옥에 티로 보이지만 당시 팀 사정이 좋아서 그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만약 충분히 관리받았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 데뷔 초에는 신인왕으로 언급되기도 했었습니다. 2010시즌에 1경기 던지고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러 갔고, 2014년에 복귀했는데 1경기 던지면서 2와 1/3이닝에 3볼넷 3실점 3자책으로 부진했고, 그 뒤로 최동환은 2014년 1군 시즌이 끝났습니다. 신인이라고 봐주는 시기도 끝났습니다.
최동환, 1군 생활 탐구
이제부터 최동환의 1군 생활을 탐구해 보겠습니다. 최동환은 15시즌부터 19시즌까지 5시즌 동안 17~35경기에 출전해서 20~38이닝 정도를 소화했고 방어율은 평균 5점대를 기록하고, WHIP는 1.19~2.14까지 기록했습니다. 군에도 다녀온 20대 후반의 선수가 보여준 아쉬운 퍼포먼스입니다. 2군 선동열이라는 능력치가 아니었다면 방출됐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아쉬움을 보였던 최동환은 20시즌에 드디어 매뉴얼을 얻게 됩니다.
20시즌에 54경기 56과 1/3이닝, 4승 1패 4홀드, 방어율 3.47, WHIP 1.17을 기록합니다. 불펜으로서 훌륭한 기록을 한 것입니다.
21시즌은 퉁하고 건넜습니다. 직전 시즌에 너무 많이 던졌는지 몇 이닝 던지지도 못하고 시즌이 끝났습니다. 아마도 다음 시즌을 아주 미리 준비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안정적으로 이후 2시즌을 맞이합니다.
22시즌에 47경기 50이닝, 1패, 방어율 4.14, WHIP가 1.24를 기록했습니다.
23시즌에 45경기 42와 1/3이닝, 1세이브 1홀드, 방어율 3.19 WHIP가 1.39를 기록했습니다.
최동환은 통산 12시즌 318경기 346과 1/3이닝을 던졌고, 방어율 4.99에 10승 5패 4세이브 14홀드, WHIP 1.43을 기록했습니다. 엄청 평범한 기록입니다. 그런데 무려 12시즌, 318경기에 등판하며 이 비좁은 리그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야구는 기록의 경기이니 살아남은 그는 강자입니다.
최동환, 패동열이자 가비지타임 적화 투수
최동환은 2군 선동열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패동렬'이라고 부릅니다. 패전 조의 선동열이라는 뜻입니다. 신인 때는 사이드암으로 던지다가 지금은 우완정통파로 스타일로 던지는데, 공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터프한 상황이 되면 제구가 안 됩니다. 이것은 정말 심리적인 영향인 모양입니다. 최동환은 공도 빠르고 한때는 공의 회전수로 리그 탑을 찍었던 적도 있습니다. 빠르고 회전수도 빠른 투수라면 오승환 급으로 컸어야 하는데, 놀랍게도 터프한 상황에서 스스로 제구가 안 돼 무너지는 게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좋은 자질이 있어도 꾸역꾸역 가비지타임을 소화하는 투수로 남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하는 그 역할을 최동환 선수는 2020년 시즌에 비로소 맡게 되었고 팀에서도 이 시기 쯤에 최동환 선수에 대한 매뉴얼이 완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좋은 공을 가비지타임에 써야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맞는 옷이라면 그렇게라도 리그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20시즌 이후로 최동환은 이 비좁은 리그에서 가비지타임 투수라는, 가비지타임에서는 내가 최고라는 공을 던집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엘지라는 팀이어서 최동환이 가비지타임을 던지지 다른 팀에 가면 승리 조"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 최동환은 다른 팀에 가도 패전 조, 추격조입니다. 그가 스스로 그런 길을 택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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