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페타신의 강림(부산 트윈스팬 생존기)

거포가 부족한 팀컬러

 엘지는 옛날부터 거포가 부족한 동네다. 맨날 똑딱이들만 모여서 똑딱똑딱하다가 역전까지는 못하고 주저앉기를 반복하는 팀이다. 연속 안타를 치고 역전하는 신바람 엘지는 말이 좋아 신바람이지 프로팀 경기에서 2연속, 3연속 안타가 나오기가 쉽지 않다. 한 게임에 10개 안타가 나오는 게임도 1년에 몇 게임 안 된다. 에이스끼리 맞붙는 게임이라면 3-4안타에서 그치는 경우도 많다. 또 안타를 10개를 치더라도 한 회에 하나 혹은 두 개씩 나눠 칠 경우에는 10안타를 치고도 1점을 못 뽑는 변비게임이 되기도 한다.(풉) 그러니 ‘딱’하는 경쾌한 타구음으로 멀리 안드로메다까지는 아니더라도 홈런선 밖으로 타구를 보낼 거포가 있고 없고는 상대팀 투수들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할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엘지에는 그런 선수가 없다. 심지어 있었는데 키우다가 다른 팀에 주기도 한다. 엘지에서는 빛을 못보고 다른 팀에 가서 빛을 보면 경우(김상사, 박뱅 등)를 일컬어 탈(엘)지 효과라고 한다.

 

신의 과거

 그런 엘지에 2010년대 한 줄기 빛이 내려왔으니 그는 페타신, 페느님인 페타지니다. 로베르토 페타지니는 베네주엘라 출신으로 이미 미국, 일본리그를 경험한 선수다. 미국에서는 24-28세 시즌을 보냈는데 트리플A를 쑥대밭으로 만든 선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그닥 빛을 발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AAAA급 선수였다. 그리고 선수노조 파업이나 같은 포지션에 팀레전드급 선수가 포진하는 등 실력 외적인 부분도 도움을 못 받았다.

 선수들이 야구를 제일 잘 한다는 29-32세 시즌을 일본 리그에서 보낸 페타지니는 일본 리그를 씹어먹게 되고 세 번째 시즌에 팀을 리그챔피언, 일본시리즈 챔피언에 올려놓는다.(임창용 선수가 뱀직구를 뿌리던 그 야쿠르트 팀이다.) 그리고 일본 부자 구단이면서 일본의 양키스 정도는 될 것 같은 요미우리와 초대형 계약을 맺는데(33-34세), 선수가 야구만 잘 한다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다. 팀 운도 있어야 하고 감독 운도 따라야 하고 부상관리도 잘 해야 한다. 여러 가지로 삐걱대다가 재계약하지 않고 미국 리그 보스턴의 마이너리그 팀과 계약한다.

 마이너리그 계약 후 부상이 있었지만 가볍게 트리플A를 정리한다. 8월에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었으나 나이가 35세인 선수에게 기회가 많이 주어질 리가 없고 2006년에 방출, 그 해에 시애틀과 계약했고 잠깐 활약했으나 기회가 더는 주어지지 않았고 멕시칸리그에서 얼마간 뛰던(2006~2008) 그를 엘지가 불렀다.(한국 나이 71년생, 38세 시즌)

 

페타신의 강림

 보통 야구 선수 나이 38세이면 코치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데 페타지니는 그 나이에도 리그를 잘근잘근 씹었다. 그리고 그를 신으로 부르게 된 39세 시즌에 당시 재박존이라 불리던 X존의 효과도 있었겠지만(잠실 구장의 펜스 위치를 2M정도 앞으로 당김) 무시무시한 장타력을 보였다. 여름에 들어서면서 극단적인 땡겨치기 스타일인 그를 위한 특별 시프트가 생겨 타율을 많이 까먹었고, 나이가 나이라 체력이 많이 떨어졌으며 무릎은 좋지 않았고 시즌 막판 즈음엔 발바닥도 좋지 않았으며 팀이 가을과 멀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 타율 0.332(6위), 26홈런(6위), 출루율 0.468(1위), 장타율 0.575(6위), OPS 1.049(2위), BB/K 1.39(볼삼비)를 찍었다. 그런데 재계약을 안 하는 돌종훈이라니(하긴 나이가 많았으니). 다음해 일본으로 갔다가 은퇴한다. 페타지니의 부인 올가 페타지니는 25세 연상인데. 띠용. 친구의 어머니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페타지니가 팀을 옮길 때마다 이 이슈가 따라 다닌다. 한번은 명단장 차명석이(그때는 명고치 시절) 그에게 물었단다. 아내를 사랑하는지 물어봤을 때 그는 “너희들은 사랑을 아직 몰라”라고 답했다고 한다. 

 아무튼 페타신이 떠난 이후에도 엘지는 어둠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 시기에 난세의 영웅(팀은 바닥이지만 팬심을 달래주는 선수들)들이 나타났는데 페타신이야 말로 그중 으뜸이었다고 본다.

*(2021년 8월에 작성한 글입니다.)